1부 4장 - 불발한 한국의 IT 혁명

 

한국발 IT 혁명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새로운 전쟁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00년대 초는 전 세계적으로 벤처 광풍의 시대였다. 수많은 기업이 창업되었고, 그중 일부 벤처들은 찬란한 성공을 이루었고, 많은 기업들은 실패했다. 그중에서도 소프트웨어의 역량을 기반으로 창업했던, 몇몇 한국 기업들은 너무도 안타까운 실패여서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왜 성공의 문턱에까지 도달했던 기업들이 그 직전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을까? 그 광풍의 시대에 필자도 IT분야의 벤처기업을 경영했던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는 생략하고, 좀 다른 시각에서 우리의 서글픈 역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페이스북이 될 뻔했던, ‘아이러브스쿨’

‘페이스북’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 인맥 서비스 사이트이다. 하버드 대학교 학생이던 ‘마크 주커버그’가 이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2004년 2월이었다. 2014년 12월 현재, 이 사이트를 이용하는 등록 사용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13억 명을 넘어섰다.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15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되었다. 이 세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이트보다도 무려 5년이나 먼저, 한국의 젊은 대학생이 비슷한 개념의 온라인 인맥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 사이트는 이름도 기억하기 쉬운 ‘아이러브스쿨(iloveschool)’ 이었다. 

페이스북이 될 수도 있었던 이 사이트.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하버드의 학생은 성공했고, 카이스트의 학생은 실패했을까?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인터뷰 (한국경제 신문, 2012년 2월)  창업자는 인터뷰에서도 술회하고 있듯이, 이 성공을 계속 만들어 나가기보다는 여차하면 빠져나가야 하겠다는 방어적 모드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까짓 거 실패하면 다시 대학으로 가서 박사 공부를 계속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투자를 통해서 거론되는 돈의 액수는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수십 억, 수백 억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머릿속은 내내 붕붕 떠 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벤처 성공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서 수많은 언론이 접촉하다 보니, 어느덧 본인은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 해 보고 열었던 사이트였고, 순식간에 성공해 버리니(회원 수가 500만이 되어 버리니) 도대체 그 다음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창업자는 경영을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기업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것이다.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인터뷰 (한국경제 신문, 2012년 2월) 

창업자는 인터뷰에서도 술회하고 있듯이, 이 성공을 계속 만들어 나가기보다는 여차하면 빠져나가야 하겠다는 방어적 모드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까짓 거 실패하면 다시 대학으로 가서 박사 공부를 계속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투자를 통해서 거론되는 돈의 액수는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수십 억, 수백 억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머릿속은 내내 붕붕 떠 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벤처 성공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서 수많은 언론이 접촉하다 보니, 어느덧 본인은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 해 보고 열었던 사이트였고, 순식간에 성공해 버리니(회원 수가 500만이 되어 버리니) 도대체 그 다음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창업자는 경영을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기업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것이다.

 

스카이프가 될 수도 있었던, 다이얼 패드

2000년, 3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그 해. 필자는 18년을 다녀온 글로벌 IT 기업을 퇴직했다. 그리고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 벤처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온라인 게임을 들고, 미국에서 온라인 게임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세계 벤처의 중심이었고, 비즈니스에 관한 아이디어만 있어도 벤처 투자가들이 달려든다는 곳이었다. 한국 벤처 기업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깨달은 현실은 너무도 높은 현실의 벽이었다. 그때 당시, 실리콘밸리에 있던 많은 한국 벤처 기업들이 가장 부러워했던 회사가 바로 ‘다이얼패드’였다.

인터넷 전화(voice over Internet protocol. VoIP). 인터넷망을 이용한 새로운 전화 통신 서비스이다. 인터넷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전화 통화가 가능하다. 다이얼패드를 만든 한국의 본사였던 ‘새롬기술’은 어떤 회사인가? 1993년에 카이스트의 전산과 석사 출신들이 만든 회사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에는 카이스트 출신의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 몰려 있었고, 창업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이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는 우수한 프로그래머들이었다. 다이얼패드는 인터넷 전화에 관한 원천 기술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다이얼패드가 순식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이얼패드 창업자 인터뷰 (연합뉴스, 2013년 2월)  다이얼패드의 경영자들은 젊은 창업자들이었다. 사업에 대한 경험도 없었을 것이다. 기술적 완성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수익모델도 없었고, 투자자들로부터는 계속 압박을 받고 있었다. 계속 무료 정책으로 회원들은 늘어갔으나, 늘어나는 회원 수만큼의 비용은 늘어만 갔다. 이때 만약 새로운 힘이 있는 투자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다이얼패드 창업자 인터뷰 (연합뉴스, 2013년 2월) 

다이얼패드의 경영자들은 젊은 창업자들이었다. 사업에 대한 경험도 없었을 것이다. 기술적 완성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수익모델도 없었고, 투자자들로부터는 계속 압박을 받고 있었다. 계속 무료 정책으로 회원들은 늘어갔으나, 늘어나는 회원 수만큼의 비용은 늘어만 갔다. 이때 만약 새로운 힘이 있는 투자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금속활자, 거북선, 그리고 온라인 게임

오래 전, 전략을 전공한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새삼 기억난다. 지난 오천 년의 우리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기회가 세 번 있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였다. 그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지식의 공유와 전파가 제대로 되었었다면 우리 한민족이 당대의 세계 초일류 국가를 이루었으리라는 것이다. 거북선도 당시로서는 초일류의 ‘전략 무기’였다. 임진왜란에서 일본을 물리친 여세를 몰아서, 일본을 점령하였었다면 아시아 역사는 어떻게 변하였을까? 앞의 두 이야기는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온라인 게임 산업의 흥망성쇠는 참으로 안타까운, 놓쳐버린 물고기의 이야기이다.


국민 모두가 참여한 마녀사냥

어느 산업이든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조선산업이 그러했고, 최근의 스마트폰 산업에서 한국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여왔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다는 것은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 전체의 부를 증가시킨다. 또한 그 산업으로 인해서 엄청난 고용 창출도 따라온다. 지난 100년간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미국에 기여한 바가 그것을 증명한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 산업은 억울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서 중요한 콘텐트인 게임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만들어 놓고도, 국내에서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상한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산업이 가지는 잠재성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게임이 가지는 악영향에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마녀 사냥에 몰린 꼴이다. 결과적으로 게임 산업은 학부모들의 공동의 적이 되고 말았고, 선거철만 되면 단골로 규제의 대상이 되었다. 분명히 게임의 중독성은 있다. 그러나, 게임이 마약과 같이 취급된다는 것은, 인터넷 세상에서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서도 성장한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세계 최대의 기부 재단을 이끌고 있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도 어린 시절, 게임 개발을 통하여 프로그래밍을 연습하였다. 이 시대 최고의 혁신가로 꼽히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그토록 선망하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첫 직장은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어디 그뿐인가? 화성으로 인간을 보내겠다고 장담하는,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테슬러’의 ‘앨런 머스크’는 이 시대 최고의 인재상이다. 그도 10살 때부터 게임에 빠졌고, 게임에 빠진 지 2년 만에 게임을 개발하여 팔았다. 

  스티브 잡스가 아타리에서 만든 게임, 브레이크아웃. 1976년에 출시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을 다룬 영화 <잡스>에서도 이 게임의 개발에 얽힌 일화가 등장한다. 잡스의 절친인 워즈니악이 실질적인 개발을 했다는 것이다. 구글은 브레이크아웃의 이미지 검색 페이지에 이 게임을 기념하는 의미로 깜짝 선물을 넣어두었다. 브레이크아웃을 검색하면, 검색 결과 속의 이미지들을 블럭으로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게 해둔 것이다. 이 곳에서 이미지 검색을 클릭하면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타리에서 만든 게임, 브레이크아웃. 1976년에 출시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을 다룬 영화 <잡스>에서도 이 게임의 개발에 얽힌 일화가 등장한다. 잡스의 절친인 워즈니악이 실질적인 개발을 했다는 것이다. 구글은 브레이크아웃의 이미지 검색 페이지에 이 게임을 기념하는 의미로 깜짝 선물을 넣어두었다. 브레이크아웃을 검색하면, 검색 결과 속의 이미지들을 블럭으로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게 해둔 것이다. 이 곳에서 이미지 검색을 클릭하면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다 


게임의 순기능을 우리 사회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게임은 소프트웨어이고 아이들이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실제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훈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지금 전 세계의 IT 기업을 이끌어 가는 대부분의 창업자가 게임을 통하여 직접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그런데, 우리는 게임을 마약과 같은 급으로 취급하였고, 게임 개발자들을 범죄인 취급하였다. 선거철만 되면, 게임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겠다는 후보들과 이를 지지하는 대책 없는 언론 때문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게임 규제법을 가진 대한민국이 되었다.


소프트웨어 전쟁의 시대, 어떻게 싸울 것인가? 

21세기 글로벌 경제 전쟁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이다. 우선 이 소프트웨어 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스스로 전략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그들의 전략을 실행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미국은 천하를 먹으려고 한다. 글로벌 테크 기업의 대부분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미국 기업들이다. 이미 전 세계는 그들의 영향력 안에 있다. 북미와 유럽에서 구글과 애플은 절대적 강자이며, 미국을 베이스로 한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 제국들의 제품은 이 지역에서 패권을 갖추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3D 프린팅이나 빅 데이터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제조업의 르네상스 전략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지켜야 할 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현재의 글로벌 시장, 북미, 유럽 그리고 중국에서의 시장을 최대한 지키면서, 일본과 아시아 시장에서 확고한 교두보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우리가 만든 하드웨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팔릴 수도 없다. 한국은 지난 10년 간 하드웨어 제조 분야에서 ‘패스트 팔로워’로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역량 부족으로 더 이상의 혁신적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고, 미국의 소프트웨어 제국들의 ‘혁신 전략’과 로컬 시장을 기반으로 한, 중국 기업들의 ‘산자이 전략’의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형국이다. 
핵심은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기업이나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프로그래머의 양과 질에 따라서 미래의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개인은 프로그래밍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실제적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기업은 개인들의 능력을 구조화시켜, 구체적 혁신 프로젝트를 통하여 소프트웨어 제품이나 서비스의 형태로 구현시켜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교육 제도와 국가 정책을 통해서 전 국민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실제적인 실행 전략을 구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너무 현실을 몰랐죠. 경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회원이 너무 빨리 늘어서 당황했고 쫓아가기 바빴습니다. 하루에 몇십만명씩 가입하기도 했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한국경제 인터뷰

이 장에서 다루는 내용들

  • 아이러브스쿨은 왜 혁명에 실패했나
  • 금속활자와 거북선에 이은 한국의 발명품
  • 다이얼패드는 왜 혁명에 실패했나
  • 온라인게임이 아이에게, 사회에, 그리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