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3장 - 융합 혁신의 촉매제

 

이 시대의 핵심역량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 집단이 모이는 곳은 의과 대학이 되었다. 지난 20여 년간, 의과 대학 집중화 현상은 더욱 골이 깊어졌다. 대학 입학 수능 성적만으로 사람의 두뇌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약간의 문제를 가지고는 있지만, 지금 현재로써는 그래도 대다수의 국민이 수긍하는 방법이다. 수능 성적으로만 본다면, 한 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대략 55만 명의 학생들 중에서 상위 2,000명의 90%는 의과대학으로 진학한다. 대한민국 최상위 인재들(상위 0.4%의 인재들이다. 2,000/550,000*100)은 이렇게 대한민국의 모든 의과대학으로 몰려든다. 이 현상이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어 온 것이다. 필자는 확신한다. 우리나라 의과 대학생들이 이 프로그래밍 분야에 관심만 기울인다면, 우리나라는 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테라노스 이야기

미국의 의료 산업 분야에 신선한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테라노스’라는 기업이 만들어 낸 새로운 혈액 진단 기법 때문이다. 모든 의학적 결정의 70%는 혈액 진단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미국만 해도 년간 100억 건의 혈액 진단이 이루어지고, 이 진단을 위해서 미국의 의료보장 기구에서 지불하는 비용만 해도 10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테라노스가 지난 가을에 서비스를 시작한 새로운 혈액 진단 기법은 결과가 빠르고, 정확하며, 가격도 싸다고 한다. 대학을 중퇴한 19살짜리 소녀가 10년 만에 이루어 낸 결과이다.

이제 30세의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Holmes)’는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이다. 주사기를 무서워하던 소녀가 검사마다 한 대롱(vial)씩 피를 뽑는 기존의 혈액 진단 기법을 혁신하고 있다. WIERED에 발표된 인터뷰에 의하면, 단 한 방울의 피(기존 방식의 1/1000)를 ‘나노테이너(nanotainer)에 수집하여 30가지의 검사를 수행한다. 피를 뽑는 방법도 커다란 주사기로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짝 바늘 끝을 갖다 대는(pinprick) 방식으로 검사자는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인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Fortune Most Powerful Women 2014

홈즈의 테라노스에서 재미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우선, 혈액 검사의 기법에서 기존 방식보다 엄청난 혁신을 이룬 방식이지만, 혈액 검사에 사용되는 화학 기법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1/1000의 혈액량으로 엄청나게 빠르게 검사를 진행한다고 해서, 새로운 화학 기법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과 동일한 기법을 사용하되, 실수를 줄일 수 있도록 검사 과정을 완전 자동화한 것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미량의 혈액만으로 기존의 검사 기법이 돌아가게 만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사업 기밀로서 공개를 하지 않았지만, 의학 분야에서의 소프트웨어 활용이 가져오는 혁신이라는 점에서 많은 교훈을 준다.

 

테라노스의 핵심 기술은 크게 화학 기법 혁신을 통한 진단과 소프트웨어 적용 측면의 혁신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화학적 기술 혁신을 통해 미량의 혈액만으로 종전과 같은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창업의 핵심 아이디어이자 원천기술이 되었다. 테라노스에서는 이를 임상 시설 개선 수정법 (CLIA ; Clinical Laboratory Improvement Amendments)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편,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는 이렇게 수집된 혈액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제공하는 데에서 혁신적 요소가 숨어있다. 즉, 여러 환자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혈액을 분석/진단하는데, 병원에서 수집된 혈액 정보를 중앙 서버로 전송해 분석하고 진단을 수행한다. 이렇게 진단이 이루어지면 개인화된 소프트웨어를 통해 건강과 질병의 경과를 기록하고 그에 따라 환자에게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테라노스Theranos라는 회사의 이름 자체가 치료Therapy와 진단Dignosis을 합한 말이라고 한다. 혈액 정보의 데이터화, 의료 데이터의 비교 분석, 그리고 개인 환자에게로의 직접적 정보 제공 등은 소프트웨어에 주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지 모를 아이디어들이다. 사업영역도 의료기관과의 B2B에만 국한되었을지 모른다. 비즈니스 모델의 여러 측면이 소프트웨어적 혁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인 셈이다.

테라노스가 꿈꾸는 미래는 더욱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칩이 내장된 반창고 같은 패치를 피부에 붙이면, 주기적으로 혈액 내의 변수를 측정하여 담당 의사와 환자에게 데이터가 전송이 되게 한 다는 것이다. 장기 질병이 있는 고위험군의 환자들에게 예방적 차원에서, 혈액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수집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세밀하게 추적 관찰한다는 것이다. 의학 분야에서의 사물 인터넷의 구현을 테라노스가 추구하는 것이다. 

 

의사와 소프트웨어

의사이면서 영어 잘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훌륭한 의사의 조건이 영어는 아니다. 영어와 프로그래밍은 배우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같은 일이다. 아니, 숙달되는 시간이나 노력의 측면에서 보면 영어보다 프로그래밍은 훨씬 효율적이다. 프로그래밍의 경우에는 3년을 배웠다면, 99%의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개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18세기의 산업 혁명이전에는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산업 혁명에 의해서 엔진이 발명이 되고, 기계화가 이루어지면서 모든 산업이 급속히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수학의 필요성이 생겨났다. 21세기 이 시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수학은 필수 과목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전문직 종사자들도 프로그래밍을 배운다면, 그래서 그 능력을 자신들의 전문 영역에서 활용하게 한다면, 각 분야에서의 혁신이 가속화될 것은 불을 보듯 확실한 일이다.

의사가 직업을 바꾸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의사가 프로그래밍을 알고 그래서 최신의 IT 기술을 이해한다면, 의학과 IT 기술을 융합하는 무한한 임상적인 아이디어가 생겨날 수 있다. 그 아이디어를 본인이 구체화하거나 그것을 다른 IT 기술자들과 함께 구현시켜 나간다면 우리나라는 의료 분야의 새로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가진 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것이 없는 자들의 입장에서 기술은 권력이다. 소프트웨어 역량은 하드웨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 한 명의 프로그래머가 백 명의 프로그래머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역량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도 크지만, 그 역량을 가진 자들 중에서도 질적인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이 시대, ‘창조 사회’의 시대에서 소프트웨어 역량은 그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더 나아가서 국가이든 갖추지 못하면 지배당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그 역량은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최고의 인재 집단들이 몰려가는 곳이 의료 분야이다. 전략적으로 의과대학에서부터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추게 한다면, 의료 산업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테라노스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훌륭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영입한 것이었다. 그녀는 화학이나 생물학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 Ken Auletta, "Blood, Simpler"

이 장에서 다루는 내용들

  • 소프트웨어가 영어보다 중요한 머니랭기지인 이유
  • 소프트웨어가 불러올 새로운 산업혁명
  • 의사가 프로그래밍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