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장 - 시대가 요구하는 프로그래머

 

우리에게 어떤 프로그래머가 필요한가?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소프트웨어 인력이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세계 경쟁에서 어려운 이유도 단 하나,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애플이나 구글보다, 프로그래밍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요구는 향후 5년 이내에 50만 명의 프로그래머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력은 수요의 1/5 수준에도 못 미친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일은 3D를 넘어서 4D라고 취급하는 한국적 현실에서, 우수 인력들은 대학 진학에서부터 프로그래밍 분야를 최고의 기피 분야로 취급한다.

 

실리콘밸리는 역할 분담의 결과이다

실리콘밸리는 마치 프로그래머의 천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의 개발자들은 미국은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이다. 개발자를 천시하고 개발자의 처우가 엉망인 우리나라에 비해서 미국은, 더구나 실리콘밸리는 개발자의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대우에 투자받을 돈은 넘쳐나는 곳이며, 몇 달 고생해서 소프트웨어만 개발하면 일확천금의 벤처 기업이 되는 곳. 그곳이 실리콘밸리라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환상이다. 인간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실리콘밸리 지역에 자리 잡은 주요 기술 관련 회사들>
수많은 테크 기업들이 밀집해있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 세계적인 기술 혁신의 상징이다. 그러나, 또한 수많은 기업들이 참담한 실패를 맛보는 곳이기도 하다. 

B2B 비즈니스가 어렵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수학이나 이공계 쪽 공부를 기피하는 현상도 우리와 똑같다. 물리학 박사를 지망하는 오리지널 미국인은 없다고 한다. 일류 대학의 물리학 박사 과정의 지망생들은 전부 아시아 계열의 이민자들이나 유학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프로그래머가 부족하기는 미국도 심각하다. 이공계 전공자나 특수 기술 보유자들에게만 발급하는 H1B 비자가 없다면, 미국의 첨단 글로벌 기업들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보유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기업인 애플의 경우를 살펴보자. 2013년의 애플의 전체 직원 수는 83,000명 정도이나 대부분이 애플 매장 직원이고, R&D 인력은 대략 15,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애플이 스폰서한 H1B 비자의 숫자가 지난 3년간 약 2,800명이다. 이미 미국에서 그린 카드를 소지하는 인도인들을 포함한다면 대략 이 회사의 1/3의 엔지니어들이 인도인들이다.이들 인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없다면, 미국도 프로그래밍을 핵심 역량으로 하는 기업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국내 H1B 비자는 전문직종 직업을 가진 외국인들에게 발급되는 비자이다. 이른바 ‘천재 비자’라고 불린다. 
2013년에 H1B 비자를 가장 많이 발급한 회사는 인도계의 인포시스이며, 대부분 테크 관련 기업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직종에 대한 H1B 비자로만 국한할 경우, 구글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1~2013년 간, 구글은 5182개의 H1B 비자를, 애플은 2820개의 H1B 비자를 스폰서했다. 
미국의 대중 물리학자인 Michio Kaku는 이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를 내놓아 화제가 되었다. 그는 한 좌담회에서 H1B 비자가 없었다면 실리콘밸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미국의 과학기술계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한다.

 

인도의 IT 아웃소싱의 등장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인도의 등장이다. 얼마 전부터, 미국에서 B2B 프로그래밍이 3D 직종으로 인식이 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시스템 통합 프로그래밍 작업은 인도인들에게 아웃소싱되기 시작하였다. 거의 모든 기업의 개발 업무가 이들 인도 기업을 통해서 아웃소싱 된다. 별다른 기간 산업이 없는 인도에서는 이런 시스템 통합 개발 업무가 인도의 고급 인력들을 활용하는 새로운 산업이 되었다. 

인도에서는 프로그래밍을 코딩하는 프로그래머의 직업이 최고의 인기 직업이다.프로그래머의 연봉은 일반 다른 직업의 연봉에 비해서 평균 6배나 많다. 대학을 졸업한 일반적인 신입 사원의 연봉이 10,000달러이라면, 프로그래머의 연봉은 60,000달러 정도인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SI 회사에서 코딩하는 프로그래머들이 들으면 기절할 수준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의 거의 모든 IT 업무를 인도 회사들이 몽땅 가져오기 때문이다.

타타(TATA), 인포시스(Inforsys)나 위프로(Wipro) 등 이미 세계적인 SI 회사로 성장한 기업들이 개발 업무에 관한 용역 계약을 할 때, 그 기준을 미국에서의 프로그래머의 연봉 수준에 맞추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에서 고용하는 프로그래머의 실력보다는 뛰어난 고품질의 프로그래밍을 제공하면서, 용역 대가는 미국 현지 프로그래머의 연봉보다도 약간만 적게 책정한다. 약간 적게 책정한 그 수준이 인도에서의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봉과 비교하면, 평균적으로 6배가 되는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코딩하는 프로그래머의 연봉을 이 정도로 올려버린다면, 불평을 토로하는 프로그래머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B2B 프로그래밍은 거의 전부 인도로, 인도인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실리콘밸리에 남아있는 개발 업무는 신생의 벤처들이 전략적인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업무이거나 혁신적인 서비스를 개발하는 B2C 성격의 개발 업무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개발자들이 직접 개발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커다란 사업적인 성공을 이룬 사례가 수없이 많다. 이런 식의 사업을 끊임없이 유도하는 벤처 캐피털 회사도 많아서, 실리콘 밸리는 혁신적인 소프트웨어와 모험적인 벤처 기업의 이상적인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열악한 B2B 프로그래머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들의 형편없는 처우 때문에 프로그래머라는 직업 자체가 3D 업종으로 여겨지면서, 우수 인력들이 기피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서 인도 쪽으로 B2B 프로그래밍 업무 자체를 아웃소싱하면서, B2C 프로그래밍이 주를 이루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B2C 부분에서의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제품과 서비스들이 출현했고, 이들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하면서, 실리콘밸리의 신화가 창조된 것이다.

 

천재를 키우는 방법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은 물론 프로그래밍 천재들에 의해서 창업되었다. 프로그래밍을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천재가 되는 것도 아니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모든 사람이 창업을 할 필요도 없다. 천재는 태어나기도 하지만, 천재는 발견되어야 하고, 또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존재이다. 태어날 때부터 알아볼 수 있는 천재가 얼마나 있겠는가? 프로그래밍의 천재도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프로그래밍을 하고, 모든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친다면, 그 속에서 프로그래밍에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 천재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이다. 오직 우수한 인적 자원뿐이다. 프로그래밍이라는 영역은 전적으로 우리 인적자원의 자질과 인적자원들을 훈련시키고 교육시키는 시스템에 달려있다. 잘못된 우리의 수학 교육처럼 점수를 위해서 암기하게 하지는 말자.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는 ‘아키텍터’도 필요하고, 창의적인 기발한 발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아이디어 프로그래머도 필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실력자들을 키워나가야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의 국산 소프트웨어에 대한 꿈을 실현할 수 있다. 언제까지 남이 만든 소프트웨어에 매달려서 그들의 결정에 우리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맡겨놓을 것인가?

머지않아서 한국은 통일이 될 것이다.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한꺼번에 우리의 인구수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난다. 그것만은 분명한 미래이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를 천만 명 이상 가지게 된다. 무엇으로 이 늘어난 인구에게 직업을 가지게 해 줄 것인가? 한꺼번에 수만 개의 공장을 지을 것인가? 지금도 일자리 창출에 지난한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인가? 제대로 된 투자와 세밀한 실천 전략이 따라준다면, 이 늘어나는 북한의 인구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통일대박’이 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과학교육에 관한 한 최악인 미국의 교육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너지지 않는 것은 사실 인도와 중국 등에서 미국에 오는 천재들 덕분이다.
— 미치오 카쿠, SAPPHIRE NOW 좌담회

이 장에서 다루는 내용들

  • 프로그래머의 실재적 분류
  • 수학을 잘 해야만 프로그래밍을 잘 하는 것이 아닌 이유
  • 실리콘밸리 프로그래머 인력의 비밀
  • 인도와 실리콘밸리의 내밀한 관계